노인인권 취재노트

작성자 admin 시간 2026-02-26 09: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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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품 사막화와 노인 인권:

'장보기의 의미와 ‘Ageing in Place(지역사회에서 나이들기)’

 

도시와 인구 소멸 지역의 장보기 격차

도시 주민에게 무엇을 먹을까?’라는 질문은 지극히 평범한 일과의 한 부분이다. 빈 냉장고는 한 시간 안에 채울 수 있고, 실시간 제공되는 가격 비교와 할인 정보도 거의 일상의 전제가 되었다. 그러나 새벽배송과 즉시배송, 다양한 구독 서비스로 도시의 장보기가 클릭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농어촌을 비롯한 인구 소멸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 주민의 장보기는 날씨와 체력, 교통편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종일의 과제가 되고 있다.

 

식품 사막의 개념과 한국의 현실

식품 접근성(food accessibility)의 문제는 식품 사막(food desert)[1]혹은쇼핑 난민(shopping refugees)’이라는 개념으로 논의되어 왔다. 식품 사막은 일반적으로 거주지에서 육류·채소·과일·유제품 등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소매점까지 승용차로 10분 이상 소요되는 지역으로 정의된다. 이때, 가공식품 위주의 편의점이나 주유소 매점은 제외된다. 이미 2000년대부터 식품 사막화를 공론화해 온 일본 농림수산성은점포까지 500m 이상 떨어져 있고 자동차 이용이 곤란한 65 

 

 

 

 

 

 

 

 

 


<한국 식품 사막 분포 분석 결과(2024); 전국기준>[2]

이상 고령자구매 약자로 정의하고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전국 행정리의 73.5%에 달하는 지역 주민들이 식료품 소매점의 부재로 장보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4년 식료품점 도달거리 조사에서는 자동차 기준으로, 면 지역 주민들의 평균 도달 소요시간이 도시 지역보다 3.7배나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매 공백으로 인한 읍 면 단위 농촌 고령 주민들의 일상의 붕괴는 도시의 선택지 과잉에 가려 충분히 가시화 되지 못하고 있다.

 

식품 접근성의 권리적 근거

식품 접근성은 단순한 생활 편의가 아닌 권리의 측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UN Principles for Older Persons)은 노인이 적정한 식량··주거·의료에 접근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사회권 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ICESCR)의 일반논평(General Comments)[3] 12호는적정한 식량에 대한 권리를 가격이나 이동비용을 고려한 가용성과 접근성을 포함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또한 일반논평 제14호는 건강권(right to health)의 실현이 보건의료를 넘어 안전한 식품과 적절한 영양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밝히며, 식품 접근성을 건강의 기본 조건으로 명시한다.

노인에게 장보기는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며, 자기 결정권이 사회적으로 연결되고 반영되는 활동으로, 이는 시설 등이 아닌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노후를 보내기(ageing in place)위한 실질적 조건이기도 하다. 무엇을 살지 스스로 결정하고, 가격을 비교하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과정은 노인의 자율성과 사회적 접촉, 일상 리듬을 지탱하는 중요한 활동으로, 제한된 식품 접근성은 고립과 타인의존의 심화, 나아가 존엄한 삶의 기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동락점빵행복장터’: 지역 공동체가 복원한 소매 인프라

이처럼 노인의 기본적 권리와 연결된 식품 접근성의 공백을 누가 어떻게 메우고 있을까? 현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시도가 축적되어 오고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사례로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이 있다. 2010년 묘량면의 마지막 구멍가게가 문을 닫은 후, 마을공동체인여민동락공동체는 단순한 복지 배급이 아닌소매 유통 인프라의 복원을 목표로 동락점빵을 세웠다. 2011년 시작된 동락점빵은 현재 약 4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1톤 트럭을 개조한 이동장터가 매주 2회 묘량면 42개 자연부락을 순환한다. 하루 40-60km를 이동하는 일정이지만, 각 마을에 20-30분씩 머무르는 동안 장터는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주민 간 대화와 안부를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된다.

<동락점빵 홍보지(출처: 영광군청 공식 웹사이트)>

 

동락점빵은 배급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상품을 비교하고 선택해 결제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보냉백에 신선식품을 담아 가정 앞까지 전달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단골 어르신이 평소 구매하던 물품을 오랜 기간 구매하지 않으면 안부를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복지센터에 연락해 인계하는데, 실제로 이를 통해 고독사 위기 상황을 발견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이들의 활동은 마을회관에서의 공공급식, 물품 공급, 마을 행사 관련 행정·회계 절차 지원, 간단한 생활 지원까지 이어지며 유통망모니터링 인프라로 동시에 기능하고 있다. 지역 노인들의 자율적 장보기와 지역사회 안전망을 함께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포천시 소흘농협이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찾아가는 행복장터역시 마트가 멀고 교통이 불편한 농촌 마을을 직접 찾아가는 이동형 장보기 서비스이다. 소흘농협은 3.5톤 트럭 등으로 개조한 차량에 생필품·식료품··축산물 등을 싣고 포천시 소흘읍 일대 여러 마을을 순회하며 주민들이 장거리 이동 없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서비스 역시 단순히 물건 판매에 그치지 않고 공과금 수납, 전화 주문과 배달 지원 등 생활 편의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특히 거동이 불편한 고령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행복장터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해 직접 마트에서 장보기가 가능해도 이동장터를 이용한다는 주민들도 있다. 마을 회관 앞에 트로트 음악을 울리며 도착을 알리는 행복장터 차량은 쇼핑 공간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밀착형 생활서비스로 평가받고 있다.

<찾아가는 행복장터의 운영 현장(출처: 농민신문)>

 

식품 사막 대응의 해외 사례

식품 사막화는 일부 국가에 국한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고령화·빈곤·지역 격차가 중첩되어 발생하는 보편적 인프라 문제로써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에는 저소득·취약 가구가 일반 상점처럼 진열된 공간에서 식료품(위생·생활용품 포함)을 정가의 일부(대개 10-30% 수준 등)만 부담하고 살 수 있게 하는 연대형 식료품점모델인 에피스리 소셜·솔리데르(Épiceries sociales et solidaires)’ 가 널리 확산돼 있다. 이 모델 역시 단순 배급이 아니라 구매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필요 시 상담, 동행, 생활지원 같은 사회적 지원과도 연결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대표적 이동장터인 도쿠시마루(とくし丸)는 지역 슈퍼마켓과 제휴해 상품을 공급받고, 이를 소형 트럭에 실어 정해진 노선을 따라 노인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방문 주기는 대개 주 1-2회로 고정되어 있으며, 차량에는 수백 종의 식료품과 생필품이 적재된다. 이용자는 물건 가격에 소액(10-20(한화로 약 100-200))의 수수료를 추가로 지불하는데, 이는 유류비와 운영비로 활용된다. 도쿠시마루는 철저한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최소 이용자 수를 충족하는 지역에 운영차량을 배치하고, 운영 기준에 미달해도 수요가 지속될 시 지자체의 공공 보조를 통해 지속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협력하고 있다. 동락점빵과 마찬가지로 정기 방문을 통해 이용자의 안부를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지방자치단체나 가족에게 연락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다. 1,000대가 넘는 차량이 전국적으로 운영되며 표준화된 매뉴얼과 데이터 관리 체계를 갖춘 점에서 가장 고도화된 이동판매 시스템이라 평가될 만하다.

<2024년 기준 도쿠시마루 트럭의 일본 전역 운영 현황(출처: 충북일보)>

(출처: 충북일보)

미국 역시 건강식품 금융지원 계획(Healthy Food Financing Initiative, HFFI)과 세제 혜택 등을 활용해 식품 사막화를 관리하고 있다. HFFI는 연방 차원에서 보조금, 융자 등 금융지원과 기술 지원을 통해 식품 사막 지역에 슈퍼마켓, 농산물 시장 등을 설립하도록 장려하는 프로그램으로, 높은 초기비용과 리스크를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는 저소득 지역에 슈퍼마켓이 들어서면 재산세를 감면해주는 정책을 통해 유통망 확대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시행하고 있다.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 수익의 한계를 보완하는 공공모델

식품 사막 지역을 위한 이동식 판매가 거의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난관은 수익성이다. 2024 12월부터 2025 1월까지 이동식 마트를 운영했던 BGF리테일은 사업에 다양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시 BGF리테일은 매주 1회 전북 진안군과 임실군에 위치한 4개 마을을 돌며 라면, 과자, 음료, 육류, 채소, 식료품 등을 판매했다. 사업 담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동식 마트 차량 운영은 유류비와 인건비, 재고 폐기 비용 등 고정·변동비 부담이 크고, 낮은 객단가로 인해 구조적으로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수익성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는 공공보조 체계와의 연계가 요구된다.

고무적인 변화는 정부가 식품 사막 대응을 위한 이동식 판매를 단순한 민간 실험이 아닌 공공 서비스의 영역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4 7월부터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동락점빵과 행복장터가 지역 공동체에서 출발한 모델이라면, 가가호호 이동장터는 식품 사막 문제를 농촌 정책의 한 축으로 정책화하려는 시도이다.

이 사업은 지자체, 지역 농협,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 지역공동체와 협업하는 4개 모델[4]로 운영된다. 농식품부가 특장 차량과 일부 장비·컨설팅을 지원하고, 지자체는 민간(농협 하나로마트, 지역 소매점 등)과 인력 확보, 운행 방법 등을 협의해 운영하는 형식이다. 또한 이동장터로만 그치지 않고, 농촌마을에서 소매점으로 직접 이동할 수 있는 셔틀버스 등을 지원하거나, 생필품 배달 외 복지문화돌봄 등 생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식 등 다양한 유형을 지자체에 제시하여 지역 여건과 특색을 녹여내고 있다. 농식품부는 가가호호 이동장터 사업을 113개 시·군을 대상으로 점진적 확대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농식품부는 농촌 공동체 회복 및 사회경제 서비스확대(국정과제70)’ 사업 추진을 위하여 농촌돌봄서비스활성화지원사업을 추진중이다. 이에 따라 2026년에는 농촌에 부족한 다양한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연대경제 조직 육성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추진 정보 이미지(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식품 사막 해결의 정책화를 위한 기반 마련

식품 사막 문제를 복지의 범주로만 한정할 경우, 대응은 단기 보조금이나 시범사업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식품 접근성은 고령자가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반 조건이자 지역의 정주 매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라는 인구구조적 문제와도 직결된다. 건강과 돌봄, 교통, 지역경제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 식품 접근성은 인권 보장, 인구구조 대응, 국토 균형발전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힌 의제인 만큼 장기적, 통합적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회입법조사처는 작년 12월 식품 사막화와 식품 접근성 약화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출간하였다. 입법조사처는 식품 사막화를 단순한 물리적 접근성의 문제를 넘어 읍·면 지역 노인가구의 건강과 삶을 좌우하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진단하며 다음의 5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한다: △공공생활서비스 전달체계와 연계한 식품지원정책 설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식생활돌봄형 식품환경 조성정책수립, △건강-영양관리 관점의지역 식생활 돌봄 프로그램운영, △이동장터의 지속가능한 운영모델 전환, △식품 접근성 관련 지표 관리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식품 접근성을 시장 실패의 보완이나 복지의 한 영역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서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이자 생활 기반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적 근거와 상시 예산, 지표 기반의 정책 설계가 뒷받침 된다면 앞서 소개한 이동장터 프로그램들이 제도적 토대 위에서 안정적으로 확장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머물 수 있는 삶을 위하여

식품 접근성은 지속가능한 정주 환경을 위한 핵심 인프라이다. 수도권 인구 과밀 역시 일자리만이 아닌 교통·의료·교육·문화가 촘촘히 연결된 생활망 구축이 유인한 현상이다. 노인에게 ‘ageing in place’는 이러한 기본 생활서비스가 갖춰질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한 권리이며, 그 권리의 보장은 장기적으로 지방 소멸의 압력을 완화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편 식품 사막화의 방치는 결국 보건의료 및 돌봄 재정으로 환류된다. 따라서 식품 접근성 개선은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닌 중장기적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 인프라 투자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식품 사막화 문제는 권리의 언어로 재정의될 때 비로소 대응이 가능해지며, 그 출발점은 가장 평범한 일상의 회복에 있다.


[1] 1990년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저소득층 거주지의 식품 공급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인구 감소·고령화로 인한 농촌 및 도시 소외지역의 식료품 접근성 결여 현상을 주로 뜻한다.

[2] 유찬희·손경민, 「한국 농촌 지역식품 사막분포에 대한 탐색적 연구」, 『농촌사회』 제34집 제2, 2024, 21pg

[3] 국제인권조약의 이행을 감독하는 조약기구(treaty body)가 조약 조항의 의미와 국가의 의무를 공식적으로 해석해 제시하는 문서.

[4] 지역 상황에 따라 배후마을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정기순회형, 취약계층에게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통연계형, 소매점 등과 연계해 사전 주문 받은 식료품을 배후마을로 배달하는 주문배달형, 지역공동체를 참여시켜 민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운영체계를 구축하는 민간 참여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