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할매래퍼 ‘수니와칠공주’, 인생을 노래하다

< 2023년, 칠곡군의 할머니들이 래퍼 그룹 ‘수니와칠공주’ 를 결성했다 (사진 : 칠곡군) >
[ 평균 연령 85세의 할매래퍼들 ]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인생은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즐겁게 랩을 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칠곡할매래퍼 그룹 ‘수니와칠공주’의 리더 박점순(86) 할머니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2024.10.11.)에서 건강한 노년의 비결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박 할머니는 요즘 느끼는 행복감을 10점 만점에 10점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수니와칠공주’는 2023년 8월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 사는 할머니들이 모여 결성한 평균 연령 85세의 세계 최고령 래퍼 그룹이다. ‘수니와칠공주’ 의 리더는 박점순(87) 할머니이며, 다른 멤버는 정두이(94), 홍순연(82), 장옥금(77), 이필선(89), 이옥자(80), 김태희(80), 이선화(77) 할머니이다. (2025년 기준)1)
이들은 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치고, 1년에 한 번 있는 성인문해교실 학예발표회 ‘2023년 경상북도 문해한마당’ 에서 랩과 춤을 공연한 것을 계기로 래퍼 활동을 시작했다. 2023년 8월 31일 마을 경로당에서 창단식을 가졌고, 이어 9월에는 며느리와 손주, 주민 등으로 팬클럽도 구성되었다.
‘수니와칠공주’ 의 랩 연습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 지천면 신4리 마을회관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멤버가 고령으로 체력이 달려 충분한 휴식과 컨디션 조절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이들은 랩 연습과 공연을 하며 오히려 활력을 찾는다고 말한다.
‘수니와칠공주’의 노랫말은 할머니들이 시 형태로 직접 쓴다. 이것을 문해교실 강사이자 그룹 기획자 겸 매니저의 역할도 맡는 정우정 강사가 다듬어서 랩 가사로 만든다. 배움의 기쁨, 여성차별로 인한 서러움 등 진솔한 가사가 눈길을 끈다. 대표곡으로는 가난과 여성차별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픔을 노래한 ‘환장하지’와 늦깎이 학생으로 한글을 배우는 기쁨과 과정을 소개하는 ‘나는 지금 학생이야’ 등이 있다. 6·25전쟁 당시 총소리를 폭죽 소리로 오해했다는 ‘딱꽁 딱꽁’과 북한군을 만난 느낌을 표현한 ‘빨갱이’ 등 전쟁의 아픔을 노래한 곡도 있다.
“나 어릴 적 친구들은 학교에 다녔지. 나 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지. 설거지해! 애 보기 해! 내 할 일은 그거지. 환장하지~!” (환장하지)
“나는 지금 학생이야. 나이가 많은 학생이야. 가방 메고 학교에 가, 얼굴도 몸도 늙은 친구들과 함께,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하호호 하하호호, 참으로 행복하지” (나는 지금 학생이야)
“흑잿골~ 아니! 송정골~ 아니! 황학골에 셋째딸로 태어났쓰. 오빠들은 모두 공부를 시켰쓰. 딸이라고 나는 학교 구경 못했쓰. 에이 우라질 우라질 우라질.” (황학골 셋째딸)
열정 가득한 이들의 활동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과 광고, 정부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데뷔 공연인 2023년 경상북도 문해한마당 공연을 시작으로, KBS 아침마당과 인간극장(한국), NHK 월드 TV(일본) 등 국내외 방송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이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024 한글 주간 개막식’ 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국가보훈부·국무총리실 등 다양한 정부 정책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2025년 현재에도 해양 관광 활성화 캠페인 ‘바다가는 달’ 홍보 영상에 출연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수니와칠공주’ 멤버들이 정우정 강사와 함께 랩을 연습하고 있다 (KBS 인간극장 중) >
(사진 : KBS1)

< 해양관광 캠페인 홍보를 위해 ‘수니와칠공주’ 멤버들이 통영 바다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
(사진 : 칠곡군)
[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인생을 바꾸다 ]
‘수니와칠공주’ 의 성공에는 두 개의 빼 놓을 수 없는 배경이 있다. 하나는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박종석 공보팀장으로 대표되는 칠곡군청의 기여이다.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은 저학력․비문해 성인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전국적인 사업으로, 일상에 필요한 기초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부터 초등학교~중학교 수준의 기초 문해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해교육을 통해 학습자들은 배움의 욕구를 해결하고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이 사업은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자체의 소속기관이나 학교, 평생교육시설 등 각 교육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교육부에서 강사비, 체험활동비 등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하는 형태이다. 특히, 읍․면 단위를 포함한 지자체 직영 프로그램은 강사가 경로당, 마을회관, 학습자 가정 등을 직접 찾아가서 교육하기도 한다. 성인문해교육 사업은 2006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누적 학습자 수가 약 82만 명에 달하며(2024년 기준 누적치), 2024년에도 전국 434개 교육기관에서 약 9만 2천 명의 학습자가 교육을 받았다.2)
‘수니와칠공주’ 할머니들이 칠곡군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실을 다니며 한글공부를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한글을 배운 이후 이들은 은행을 혼자 다니거나 버스를 물어보지 않고 탈 수 있게 되는 등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상생활에서의 편리함을 누리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문해교실에서의 시쓰기, 글짓기를 통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현재를 기록하며 자신의 삶을 글로써 풀어내고 많은 사람과 나누게 되었다. 랩 가사 또한 이렇게 담아낸 할머니들의 인생 그 자체이자, 공간적 제약과 세대를 넘어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성인문해교육은 단순히 문자 해득 능력을 기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인의 자존감 회복, 사회 참여 확대, 세대 간 소통 등 다차원적인 효과를 지닌다. ‘수니와 칠공주’의 할머니들 또한 한글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을 스스로 처리하며, 자신이 겪은 삶의 이야기를 시와 노래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문자라는 도구를 통해 자기 삶을 기록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수단을 확보한 것이며, 학습자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 할머니들의 삶을 무대에 올린 주역, 칠곡군 공보팀장 ]
‘수니와칠공주’가 탄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칠곡군청이다. 칠곡군은 단순히 문해교실을 운영한 데 그치지 않고, 칠곡할매래퍼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해 지역 홍보와 연결시켰다.
칠곡군은 인구 약 11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지만 그 이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있었고, 할머니들의 글씨를 모아 만든 ‘칠곡할매글꼴’ 은 대통령 연하장에 활용되기도 했다. 이어 등장한 칠곡할매래퍼 또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칠곡군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는 칠곡군이 꾸준히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브랜딩하여 지역 홍보를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칠곡군청의 박종석 공보팀장이다. 그는 1998년 해병대 장교로 입대해, 2008년 교육훈련단 공보과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금융기관 홍보팀을 거쳐, 칠곡군청에서는 2015년부터 홍보를 맡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각종 스토리텔링을 통한 지역 홍보에 능하다. 그는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는 ‘천안함 챌린지’, 6·25 전쟁 당시 실종된 엘리엇 미국 육군 중위 사연 발굴 등 통해 칠곡군을 ‘호국과 보훈의 고장’으로 각인시켰다. 호국보훈이 일상에서 동떨어진 역사 교과서와 같은 느낌을 주지 않도록 ‘현재성’을 담은 이야기 중심의 홍보를 펼쳐 성공한 것이다.
‘수니와칠공주’ 또한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이 자신의 인생을 담은 시를 써 유명해지자 박 팀장이 랩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연예인을 꿈꿨던 군청 공무원을 ‘랩 선생님’ 으로 붙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칠곡할매래퍼는 2025년 현재 6팀이나 된다. 칠곡할매래퍼의 선두에 선 ‘수니와칠공주’ 는 공연 활동을 통해 칠곡군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한편, 뮤직비디오를 통해 지역 농산물 공동 브랜드 ‘건강담은 칠곡할매’를 홍보하는 등 활발한 지역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수니와칠공주’ 는 할머니들에게도 칠곡군에게도 win-win이 된 셈이다.

< 지역 농산물 브랜드 ‘건강담은 칠곡할매’ 를 홍보하는 ‘수니와칠공주’ > (사진 : 칠곡군)
< ‘건강담은 칠곡할매’ 홍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수니와칠공주’ 와 래퍼 ‘슬리피’ > (사진 : 칠곡군)
[ 노인인권의 관점에서 본 ‘수니와칠공주’ ]
‘수니와칠공주’ 사례는 노인 인권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령자라는 이유로 주변부로 밀려났던 이들이 한글교육을 통해 사회의 중심에 서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하게 된 것은 노인의 사회 참여 권리를 실현한 사례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노인을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창의성을 지닌 사회적 자원으로 인식하도록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칠곡군의 사례는 지역사회가 노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함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는 향후 성인문해교육과 지자체의 노인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교육을 통한 인권 증진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수니와칠공주’ 의 이야기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폴란드 출신 감독 파트리차 스카프스카에 의해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2025년 5월 말 폴란드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는 할머니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2025년 연초에 있었던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멤버인 이필선 할머니 또한 ‘비행기를 타고 가서 해외 공연 한 번 해보는게 올해의 목표’ 라고 말한 바 있어, 이들의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주목된다.
‘수니와칠공주’는 랩을 통해 자기 삶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목소리를 내며, 고정관념을 넘어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노인’이라는 말에 따라붙던 수동성과 의존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창조와 표현의 가능성을 새로이 입힌다. ‘수니와칠공주’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노년의 자아실현을 전 세계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더 나아가 노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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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멤버는 8명이었으나, 2024년 10월 서무석(향년 86세) 할머니가 혈액암으로 별세하면서 공석이 생겼다. 이를 채우기 위해 2025년 3월 18일,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공개 오디션이 열렸고, 6명의 지원자 중 77세의 이선화 할머니가 새 멤버로 합류했다.
2) 교육부, ‘2025년 성인 문해교육 지원사업 기본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