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부담에 ‘쪼개진’ 노인 일자리… “주15시간 넘게 일하고파”
노지운·성윤정·정철순 기자 입력 2025-11-04 09:40 수정 2025-11-04 09:51
■ 창간 34주년 특집 - 베이비붐 1세대 ‘인생 2막’ 리포트
(3) ‘월 60시간’에 갇힌 일자리
주휴수당·4대보험 의무화 탓
거의 월60시간 미만 허드렛일
월급 달랑 57만원… 용돈 수준
노년층 일자리 미스매치 심각
“지난경력 전혀 고려받지 못해”
재취업 힘썼지만 반년째 백수
“15년은 더 벌어야할텐데 막막”
“경력을 살려 일하고 싶은데 권하는 일자리 대부분은 보험 영업과 버스 운전기사뿐이네요.”
지난달 21일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에서 만난 김모(63) 씨는 이같이 말하며 “오늘도 빈손”이라고 허탈해했다. 김 씨는 40년 동안 몸담은 승강기 회사에서 올해 4월 퇴직했다. 국민연금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웠던 그는, 재취업을 위해 일자리센터와 일자리박람회를 꾸준히 찾아다니며 구직에 나섰지만 아직도 일자리를 못 구했다. 그는 “생전 해보지도 않은 보험 영업 같은 일을 하고 싶겠느냐”며 “인생 후반기를 그냥 흘려보내기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중략)
법정은퇴연령인 60세를 훌쩍 넘긴 1세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중 앞선 김 씨와 A 씨처럼 재취업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적잖다. 각기 경력은 다르지만 퇴직 이후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일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고 월 200만~300만 원 수준의 소득으로 생활하길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일보가 현장에서 만난 1세대 베이비부머들은 “65세를 넘을 경우 선택의 폭이 크게 줄어들고, 한 달에 60시간 일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일자리플러스센터 등을 통해 ‘중장년층 경력 설계’ ‘직무 훈련’ 등 일자리 매칭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은 중장년 일자리 예산 규모와 사업 참여 인원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는 중장년층이 일하면서 사회공헌과 직업탐색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취지로 ‘가치동행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월 최대 57시간으로 근로시간 제한이 있다. 선발돼도 매월 57만1710원의 용돈을 받는 수준에 그친다. 구직에 나선 베이비부머들은 월 57시간 이상을 일하더라도 한 달에 200만~300만 원을 벌기 원하는데, 공공에서 제공하는 중장년 일자리 대부분은 ‘초단시간 근로자’와 같은 ‘월 근로시간 60시간 미만’으로 맞춰져 있는 게 현실이다.
일자리를 공급하는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충분한 생산성을 검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령 직원을 고용할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등에 따르면,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법적으로 ‘초단시간 근로자’로 분류돼 퇴직금·주휴수당·연차수당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건강보험 등 4대 보험 의무 가입대상도 아니다. 역으로,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고령의 직원을 월 60시간 이상 근무하게 할 경우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중장년 직원을 고용한 경험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비슷한 비용이면 젊은 직원을 쓰거나 해당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자리 미스매치’로 인해 재취업 시장에서 겉도는 베이비부머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한 구청에서 주최한 일자리박람회 행사장은 시작 1시간 전부터 돋보기안경을 쓴 채 게시대에 올라온 취업공고를 확인하는 이들로 크게 붐볐다. 펜을 꾹꾹 눌러가며 이력서를 쓰는 이들의 눈빛에 열정이 가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표정과 함께 행사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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